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은 센고쿠 시대(1467년~1615년)에 가이국(현재의 야마나시현)을 다스린 무장이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가이의 호랑이’라 불렸으며, 그가 이끈 기병대를 중심으로 한 다케다 군은 센고쿠 시대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오다 노부나가조차 두려워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의 생애와 일화, 명언을 소개해 보겠다.

포인트

  • 정보 수집·군략·통치에 뛰어난 센고쿠 시대의 명장.
  • 21세에 쿠데타를 일으켜 가독을 계승.
  • 호적수인 우에스기 겐신과 5차례에 걸친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센고쿠 시대에도 유명한 전투 중 하나.
  • 가이국을 거점으로 시나노·스루가를 제압하고, 우에스기 겐신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격전을 벌였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와 대립하면서도 천하 통일을 목표로 서상 작전을 시작했으나, 도중에 사망.

다케다 신겐 인물 연표

서기 발생한 사건
1521년 현재의 야마나시현에서 센고쿠 다이묘 다케다 노부토라의 장남으로 태어남
1541년 쿠데타로 아버지를 내쫓고 가독을 계승
1542년 동맹 관계였던 스와로 침공
1548년 무라카미 요시키요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큰 손실을 입음
1553년 우에스기 겐신과의 전투: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1554년 이마가와 요시모토·호조 우지야스와 고소슌 3국 동맹을 체결
1561년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156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슨푸성을 공략
1572년 서상 작전을 시작.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격파
1573년 병으로 사망

다케다 신겐의 생애

센고쿠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 다케다 신겐은 평생 수많은 전투와 정무에 힘쓰며 명장으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젊은 나이에 가독을 이은 신겐은 내정과 군사의 양면에서 성과를 내며 센고쿠 난세를 헤쳐 나갔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자.

쿠데타로 젊은 나이에 가독을 계승

다케다 신겐은 1521년 가이국에서 센고쿠 다이묘 다케다 노부토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무예에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노부토라는 가이국을 잘 통합한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강압적인 통치로 가신과 민중의 불만도 많았다.
다케다 신겐은 가신들과 협력해 1541년 아버지 노부토라를 스루가국(현재의 시즈오카현)으로 추방하고 가독을 이었다.
당시 아직 21세였지만, 이미 탁월한 지도력과 통솔력을 발휘하며 다케다 가문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다케다 신겐은 현재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국에서 태어났다
다케다 신겐은 현재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국에서 태어났다

시나노 침공과 고소슌 3국 동맹

가독을 이은 다케다 신겐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이웃 나라 시나노(현재의 나가노현)로의 침공이었다.
첫 표적은 스와였다. 아버지 노부토라 때는 동맹 관계였고 여동생의 시집이기도 했지만, 아버지 노부토라가 추방되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스와에서 가이로 침공해 올 우려가 있었다.
1542년 다케다 신겐은 스와로 군을 진격시켜 다이묘 스와 요리시게의 거성 우에하라성을 함락한 뒤, 이어서 구와바라성을 포위했다.
화친을 가장해 스와 요리시게를 불러내 자결로 몰아넣었다. 이로써 스와를 제압하고 시나노 침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나노에는 많은 유력자가 있었고, 무라카미 요시키요, 오가사와라 나가토키, 기소 요시마사 등과의 전투가 이어지게 된다.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요시키요와의 전투는 격렬해 1548년 우에다하라 전투에서는 패배해 중신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외교를 구사해 1554년 스루가국의 이마가와 요시모토, 사가미국(현재의 가나가와현 일부)의 호조 우지야스와 고소슌 3국 동맹을 맺는다.
이 동맹으로 동쪽과 남쪽의 국경을 안정시키고 시나노 제압에 전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스루가국을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
스루가국을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

호적수 우에스기 겐신과의 격전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나노 제압을 추진하던 다케다 신겐 앞을 가로막은 인물은 에치고국(현재의 니가타현)을 다스리던 우에스기 겐신이었다.
다케다 신겐에게 몰린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우에스기 겐신을 의지해 에치고국으로 도망친 일을 계기로, 우에스기 겐신은 시나노로 출병하며 양자의 대립이 본격화된다.
이 대립이 형태로 드러난 것이 ‘가와나카지마 전투’다. 1553년부터 1564년 사이 총 5차례 양군이 대치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격전이 된 것은 1561년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였다.
이 합전에서는 다케다 군이 약 2만 명, 우에스기 군이 약 1만 3천 명을 동원했다고 하며, 센고쿠 시대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였다.
이 전투에는 우에스기 겐신이 말을 타고 다케다 신겐의 본진으로 베어 들어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우에스기 겐신이 칼을 휘두르고 다케다 신겐이 군배로 받아냈다는 일화는 창작일 가능성이 크지만, 에도 시대의 군기물 등을 통해 퍼져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전황은 결판이 나지 않았고, 결국 양군은 철수했다. 이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직접 충돌을 피하고 각자의 전선에 힘을 쏟게 된다.
두 사람이 대면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센고쿠 시대를 대표하는 호적수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다케다 신겐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
다케다 신겐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

추가 세력 확장과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대립

시나노에서 패권을 확립한 다케다 신겐은 다음 확장지로 시선을 돌렸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동맹 관계였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토벌되며 정세가 크게 변한다.
다케다 신겐은 고소슌 3국 동맹을 파기하고 스루가로 침공, 스루가국의 요지를 차례차례 제압해 나갔다.
이 움직임으로 이마가와 가문과 동맹을 맺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대립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다케다 신겐은 도토미국(현재의 시즈오카현)에도 군을 진격시켜 미카와국(현재의 아이치현)과의 경계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한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었고, 결국 다케다 신겐은 두 사람의 연합 세력과 적대하는 구도로 나아간다.
세력을 넓혀 가던 다케다 신겐은 센고쿠의 패자를 목표로 교토 진군을 시작했다.
이른바 ‘서상 작전’으로 나아가게 된다.

다케다 신겐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적대 관계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적대 관계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지병 악화로 서상 작전을 단념

교토로의 진군 도중, 다케다 신겐은 미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격돌한다.
압도적인 병력 차로 이에야스 군을 격파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자신이 간신히 하마마쓰성으로 도망쳐 돌아갔다는 에피소드는 이에야스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알려져 있다.
순조로워 보였던 서상 작전이었지만, 다케다 신겐의 지병이 악화되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573년 귀국 도중 미노국(현재의 기후현)에서 몸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 향년 53세.
뒤를 이은 이는 다케다 가쓰요리였지만, 아버지 같은 통솔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고 다케다 가문은 점차 힘을 잃게 된다.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있는 다케다 신겐 공 묘소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있는 다케다 신겐 공 묘소

다케다 신겐과 관련된 에피소드

센고쿠 최강으로 평가받은 다케다 신겐의 강함의 비결과 의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생애의 사건뿐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에피소드까지 알면, 다케다 신겐의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케다 신겐의 군략 기반이 된 ‘후린카잔’

‘후린카잔’은 다케다 신겐이 군기에 내걸었다고 전해지는 말로, 그의 전략을 상징하는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확히는 아래 4개의 문장이 군기에 적혀 있었고, 이를 줄인 것이 ‘후린카잔’이다.

  • 빠르기는 바람과 같이
  • 고요하기는 숲과 같이
  • 침략하기는 불과 같이
  • 움직이지 않기는 산과 같다

중국의 병법서 ‘손자’의 한 구절에서 인용된 것으로, 다케다 신겐은 이를 군략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의미는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고, 진을 칠 때는 숲처럼 고요하며, 공격할 때는 불처럼 격렬하고, 지킬 때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현대에도 ‘후린카잔’은 비즈니스나 스포츠의 전략론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인 에린지에도 ‘후린카잔’ 병풍이 장식되어 있다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인 에린지에도 ‘후린카잔’ 병풍이 장식되어 있다

센고쿠 최강 군단을 뒷받침한 닌자 집단

다케다 신겐의 강함의 본질은 센고쿠 최강으로 평가받는 기병대가 아니라, 치밀한 정보 수집에 뒷받침된 능숙한 전술에 있었다고 한다.
다케다 군에서 주로 정보 수집을 맡은 것은 ‘미쓰모노’나 ‘슷파’라 불린 닌자 집단이다.
미쓰모노는 적의 정보를 조사하거나 주변의 적을 정찰하고, 적지에 잠입해 군세와 보급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은 여성 무녀로 구성된 ‘아루키미코’라는 집단이다.
아루키미코는 신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여행하며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기도나 점을 보며 살아가던 여성을 말한다.
센고쿠 시대에는 일반인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아루키미코는 성직자로서 어디서나 받아들여져 의심받지 않고 정보 수집을 할 수 있었다.
다케다 신겐은 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특성과 사회적 신용에 주목해 첩보 기술을 익히게 하고 정보망의 한 축을 맡겼다고 한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아루키미코의 이미지
여성만으로 구성된 아루키미코의 이미지

미소년에게 바람을 해명하는 다케다 신겐의 편지

지금까지 소개한 다케다 신겐의 인물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의외의 에피소드도 남아 있다.
그것은 다케다 신겐과 가신 슌게쓰 겐스케 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다.
다케다 신겐과 슌게쓰 겐스케는 주군과 가신이라는 관계를 넘어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센고쿠 시대에는 목숨을 건 주종 관계가 이윽고 연애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고, 특히 젊고 아름다운 측근이 모시는 가운데 이런 유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날 다케다 신겐이 야시치로와 밀회한 사실을 알게 된 슌게쓰 겐스케는 불쾌해졌다.
이를 알게 된 슌게쓰 겐스케는 기분이 상했다. 연인의 바람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케다 신겐은 서둘러 해명 편지를 써서 ‘야시치로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 ‘만약 거짓이 있다면 신벌을 받아도 좋다’며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이 편지는 현존하며 도쿄대학교 사료편찬소에 소장되어 있다.

다케다 신겐의 의외의 면모가 엿보이는 편지 에피소드
다케다 신겐의 의외의 면모가 엿보이는 편지 에피소드

다케다 신겐의 명언

센고쿠 시대 무장 가운데서도 인기가 높은 다케다 신겐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울림을 주는 명언을 남겼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명언을 소개하자.

사람은 성, 사람은 돌담, 사람은 해자. 인정은 아군, 원수는 적이다

다케다 신겐의 통치 철학을 상징하는 말이다.
‘사람이야말로 나라를 지키는 성이며 돌담이며 해자다. 사람에게는 정을 가지고 대하고, 배려 없는 방식을 피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훌륭한 성과 돌담을 쌓아도 최종적으로 나라를 받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상을 나타낸다.
가신과 백성을 소중히 하고 은혜를 담아 대하면 자연히 아군이 되지만, 함부로 대하면 적이 된다. 센고쿠 시대의 인재와 신뢰의 무게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명언이다.

나는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 업을 쓰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 그 자체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케다 신겐은 가신과 부하의 재능을 간파해 각각의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조직을 최대한 기능하게 했다.
누군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특성을 살리는, 신겐의 유연한 리더십이 드러난다.
현대의 기업 경영과 팀 만들기에도 통하는 생각이며, ‘사람을 살린다’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선견지명의 명언이다.

하면 된다.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될 일을 안 된다고 버리는 사람의 덧없음

이 말은 ‘하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채 포기해 버리는 사람의 나약함’을 지적한 명언이다.
노력을 거듭하면 이룰 수 있는 일도 처음부터 무리라고 단정해 포기해 버리는 인간의 약함과 마주한 말이다.
신겐은 실제 전투와 정치에서도 겉보기엔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궁리와 노력을 거듭해 길을 열어 왔다. 그런 그의 신념이 간명하게 표현된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다케다 신겐과 인연이 깊은 곳

야마나시현에는 다케다 신겐과 인연이 깊은 명소가 많다.
야마나시현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곳에도 꼭 들러 보길 바란다.

1. 다케다 신겐 공 동상

고후역 앞에 다케다 신겐의 위업을 기리는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으로 1969년 동상이 세워졌다.
이후 도시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으며, 매년 12월에는 대청소도 진행하며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
동상은 신겐이 평생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과 맞붙었던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진중 모습을 모델로 삼았다.

야마나시현 고후의 상징! 다케다 신겐 공 동상과 기념사진
야마나시현 고후의 상징! 다케다 신겐 공 동상과 기념사진

2. 겐토쿠산 에린지

린자이종 묘신지파의 유서 깊은 절로,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이기도 하다.
1330년 무소코쿠시에 의해 개창된 에린지는 1564년 다케다 신겐에 의해 보리사로 정해졌다.
유력 무장들이 군웅할거하던 센고쿠 시대 한가운데 가이 다케다 씨는 멸망했고, 기세를 탔던 당시의 천하인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에린지는 불태워진 과거가 있다.

센고쿠 최강이라 불린 무장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
센고쿠 최강이라 불린 무장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

3. 신겐의 탕 유무라 온천

헤이안 시대의 승려 고보대사에 의해 808년에 열렸다고 전해지는, 1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온천지다.
센고쿠 시대의 명장 다케다 신겐이 자주 이곳을 찾아 전투의 피로와 상처를 달랬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다.
온천 거리에는 일본 정원이 아름다운 호텔, 노포 료칸 등 다양한 타입의 숙박시설이 있다.

1200년 이어진 유서 깊은 온천지에서 여유롭게 여행의 피로를 풀어 보자
1200년 이어진 유서 깊은 온천지에서 여유롭게 여행의 피로를 풀어 보자

사진

  • 센고쿠 시대 최강으로 평가받고 ‘가이의 호랑이’라 불린 명장

    센고쿠 시대 최강으로 평가받고 ‘가이의 호랑이’라 불린 명장

  • 다케다 신겐은 현재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국에서 태어났다

    다케다 신겐은 현재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국에서 태어났다

  • 스루가국을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

    스루가국을 다스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

  • 다케다 신겐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

    다케다 신겐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

  • 다케다 신겐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적대 관계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적대 관계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있는 다케다 신겐 공 묘소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있는 다케다 신겐 공 묘소

  •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인 에린지에도 ‘후린카잔’ 병풍이 장식되어 있다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인 에린지에도 ‘후린카잔’ 병풍이 장식되어 있다

  • 여성만으로 구성된 아루키미코의 이미지

    여성만으로 구성된 아루키미코의 이미지

  • 다케다 신겐의 의외의 면모가 엿보이는 편지 에피소드

    다케다 신겐의 의외의 면모가 엿보이는 편지 에피소드

  • 야마나시현 고후의 상징! 다케다 신겐 공 동상과 기념사진

    야마나시현 고후의 상징! 다케다 신겐 공 동상과 기념사진

  • 센고쿠 최강이라 불린 무장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

    센고쿠 최강이라 불린 무장 다케다 신겐의 보리사

  • 1200년 이어진 유서 깊은 온천지에서 여유롭게 여행의 피로를 풀어 보자

    1200년 이어진 유서 깊은 온천지에서 여유롭게 여행의 피로를 풀어 보자

기본정보

일본어 명칭
武田信玄(たけだ しんげん)
출생년
1521년
몰년
1573년
향년
53세
출생지
가이국(현재의 야마나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