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다 노부나가
천하통일의 꿈을 합리적·혁신적으로 좇은 카리스마.
센고쿠 시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천하통일을 선언한 오다 노부나가.
합리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전쟁과 정책, 적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냉정함.
카리스마와 일화가 많아 애니메이션·만화·드라마 소재로도 자주 다뤄지며,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무장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삼대 영걸’로 불리기도 하죠.
센고쿠 시대의 카리스마는 어떻게 성장해 어떤 활약을 했을까요?
그의 생애·명언·일화를 통해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그려봅시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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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국의 다이묘 적장자로 태어나, 소년·청년기에는 ‘우츠케’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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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을 이은 뒤 일족 내 반대 세력이 생기지만 오와리국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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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뒤집고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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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내세워 상경, 이후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추방해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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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으로 화승총을 전투에 활용,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군에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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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혼노지의 변에서 자결
오다 노부나가 인물 연표
| 서기 | 사건 |
|---|---|
| 1534년 | 오다 노부히데의 적장자로 태어남 |
| 1549년 | 미노국 영주 사이토 도산의 딸 노히메와 정략결혼 |
| 1552년 | 가독을 계승 |
| 1558년 | 동생 오다 노부카쓰를 암살 |
| 1560년 |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토벌 |
| 1568년 |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해 상경 |
| 1570년 | 아사쿠라 가문 정벌을 시작 |
| 1571년 | 아사쿠라 가문을 숨겨준 히에이산 엔랴쿠지를 공격 |
| 1573년 |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추방하고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시킴 |
| 1574년 | 나가시마 잇코잇키를 진압 |
| 1575년 |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가쓰요리 군에 승리 |
| 1576년 | 추방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필두로 각지 다이묘가 반기를 듦 |
| 1582년 | 혼노지의 변으로 자결 |
오다 노부나가의 생애
다이묘의 적장자로 태어나 여러 혁신을 일으키며 천하통일을 목표로 했지만, 뜻을 이루기 전 세상을 떠난 오다 노부나가. 그의 업적과 함께 생애를 따라가 봅시다.
수많은 난관을 넘어 오와리국을 통일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국(현재의 아이치현) 다이묘 오다 노부히데(おだ のぶひで)의 적장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나고야성의 전신인 나고노성(なごやじょう)에서 보냈죠.
오와리국과 대립하던 미노국(현재의 기후현 남부)이 부친 오다 노부히데와 화친하면서,
노부나가는 미노국 영주 사이토 도산(さいとう どうざん)의 딸 노히메(のうひめ)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노부나가가 18세가 되던 해, 부친 오다 노부히데가 병으로 사망.
이로써 노부나가가 가독을 잇게 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각종 기행으로 ‘우츠케(우매한 사람)’라는 평판이 퍼졌고, 부친 장례식에서의 난폭한 행동까지 겹치며 오다 가문 일족 중에는 가독 상속에 반발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특히 동생 오다 노부유키(おだ のぶゆき)는 자신이 정통 후계자라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오다 일족뿐 아니라 오와리 국내에도 대항 세력이 곳곳에 있어, 오와리국은 아직 통일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교육 담당이었던 히라테 마사히데(ひらて まさひで)는 노부나가의 기행·난폭함을 바로잡기 위해 자결합니다.
가독 상속 직후부터 시련이 닥쳤지만, 노부나가는 오다 노부유키를 암살하고 대항 세력을 제압해 오와리국을 통일합니다.
천하통일을 목표로 대항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

여러 난관을 넘긴 노부나가에게 또 다른 위기가 닥칩니다.
스루가국(현재의 시즈오카현)의 이마가와 요시모토(いまがわ よしもと)가 오와리국을 침공한 것이죠.
이마가와 군은 2만5천 명, 오다 군은 약 4천 명.
병력 차이가 압도적이어서 이마가와 쪽으로 돌아서는 가신도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는 군을 고무하기 위해 직접 아쓰모리(あつもり)를 춥니다.
아쓰모리는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바탕으로 한 ‘노’로,
인간 50년 하천 안을 흔들면 꿈환과 같이 된다. 일단 삶을 얻고 멸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야합니까?
“人間五十年 下天の内をくらぶれば 夢幻のごとくなり。一度生を得て滅せぬ者のあるべきか”
라는 구절로 유명합니다.
이는 “인간의 50년은 천상의 시간에 비하면 꿈처럼 덧없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라”는 메시지를 담아 노부나가가 춤을 췄다고 여겨집니다.
아쓰모리로 사기가 오른 오다 군은 이마가와 요시모토 한 사람의 목만 노리는 전술을 택했고, 날씨까지 도와 결국 요시모토 토벌에 성공합니다.
‘오케하자마 전투(おけはざまのたたかい)’는 오다 노부나가의 승리로 끝나죠.
승세를 몰아 미노국도 평정합니다.
막부 부흥을 도와줄 다이묘를 찾고 있던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あしかが よしあき)와 만나 함께 상경해 천하통일을 선언합니다.
천하통일을 위해 에치젠(현재의 후쿠이현)의 아사쿠라 가문 정벌을 시작하지만,
여동생 오이치가 혼인한 아자이 나가마사(あざい ながまさ)가 아사쿠라 편으로 돌아섭니다.
몇 차례 전투 끝에 아사쿠라 가문이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강화 교섭을 간청하면서 일시 휴전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가문과 아자이 나가마사를 용서하지 않았고, 두 세력을 숨겨준 엔랴쿠지에 공격을 가합니다.
강화를 받아들였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도 노부나가와의 노선 차이로 교토에서 추방되며,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합니다.
이후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가문과 아자이 나가마사를 토벌합니다.
천하통일을 추진하던 중, 오사카 혼간지가 갑자기 거병하고 각지에서 잇코잇키가 발생합니다.
1574년에는 이세 나가시마(현재의 미에현 구와나시)에서 ‘나가시마 잇코잇키’가 일어나지만 진압합니다.
잇키 세력은 목숨을 구걸했으나, 남녀 1,000명을 붙잡아 참살하고 오사카 혼간지를 항복시켰습니다.
명실상부 천하인이 되지만, 가신의 배신으로 자결

아시카가 요시아키 추방, 아사쿠라 가문 정벌, 잇코잇키 진압으로 바빴던 노부나가의 틈을 타, 동맹이던 도쿠가와 이에야스(とくがわ いえやす)의 영지가 ‘센고쿠 최강’이라 불린 다케다 신겐(たけだ しんげん)에게 침공당합니다.
1573년 미카타가하라 전투(みかたがはらのたたかい)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해 맞서지만 패배.
그러나 1575년 나가시노 전투(ながしののたたかい)에서는 당시 최신 무기였던 화승총을 활용한 전술로 다케다 군에 승리합니다.
나가시노 전투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투에 화승총이 본격적으로 쓰이며, 칼과 창 같은 근접 무기가 주류였던 전쟁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이후 조정으로부터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보다 높은 관위를 받아 천하인이 됩니다.
하지만 천하인이 된 노부나가의 목을 노리고, 교토에서 추방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필두로 각지의 다이묘가 반기를 듭니다.
반대 세력을 진압해 가던 노부나가는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あけち みつひで)에게 배신당해, 유명한 혼노지의 변에서 자결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아케치 미쓰히데는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とよとみ ひでよし)에게 토벌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명언
다른 역사적 위인들처럼 오다 노부나가도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합리적·혁신적인 인물로 알려진 노부나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명언을 소개합니다.
공격을 한 지점에 집중하라,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는 데만 집중했던 오케하자마 전투의 전술처럼, “목표를 이루려면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고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노부나가의 합리적인 사고가 담긴 말입니다.
이상을 세우고 신념으로 살아라. 이상·신념을 잃은 자는 싸우기 전부터 진 것이다. 그런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천하통일을 선언하고, 그 꿈을 합리적·혁신적인 방식으로 끝까지 좇으며, 어떤 반대 세력이 나타나도 꺾이지 않았던 것은 강한 신념과 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의 굳은 결의와 천하통일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전해지는 명언이죠.
일화
명언과 함께, 오다 노부나가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대우츠케’로 불리던 소년·청년기
오다 노부나가는 기괴한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걸어가며 밤·감·떡을 먹는 등 품위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친 오다 노부히데의 장례식에서는 향가루를 불전에 던지고 말없이 떠나는 등, 기행을 넘어선 난폭한 행동도 있어 사람들에게 ‘대우츠케’로 불렸습니다.
‘우츠케’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 기행·난폭함을 바로잡으려던 교육 담당 히라테 마사히데가 자결할 정도였죠.
자칭 ‘제6천마왕’
오다 노부나가는 편지에 ‘제6천의 마왕 노부나가’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어딘가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 수도 있죠.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스스로 그렇게 부른 게 아니라, 엔랴쿠지를 불태우고 사찰·불상, 잇코잇키 관련 인물들을 철저히 탄압한 데 분노한 불교도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6천마왕은 수행을 방해하는 불교의 적을 뜻합니다.
불교도 입장에서는 노부나가가 그야말로 제6천마왕처럼 보였던 것이겠죠.
탄압받던 불교도들은 같은 불교도인 다케다 신겐에게 도움을 청했고,
다케다 신겐은 노부나가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며 자신을 일본 불교·천태종에서 강한 권력을 지닌 직책인 ‘천태좌주 사문(てんだいざすしゃもん)’에 비유했습니다.
이에 대한 답장으로 노부나가는 그에 대비되는 존재, 즉 불교의 적인 ‘제6천의 마왕 노부나가’라고 적었던 것입니다.
풍자를 위해서였다 해도, 직접 그렇게 칭한 걸 보면 ‘제6천마왕’이란 호칭이 꽤 마음에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신이 난청이 될 만큼의 하이톤 보이스
오다 노부나가는 이미지상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교류가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저서 『일본사』에는 “목소리가 높고 잘 울린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또 노부나가가 발포 명령을 외치면 철포 아시가루가 일시적으로 난청이 되는데, 그 덕분에 총성이 괴롭지 않게 된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집니다.
와인을 처음 마신 일본인
센고쿠 시대부터 남만과의 무역이 시작되며, 기독교뿐 아니라 다양한 물건이 일본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던 노부나가는 남만에서 들어온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시험하고 즐겼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와인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노부나가가 일본인 최초로 와인을 마셨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 밖에 금평당(콘페이토)이나 바나나도 노부나가가 처음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만의 문화와 기술을 정치와 전쟁에 빠르게 활용했습니다.
나가시노 전투의 화승총 전술은 남만 기술을 살린 대표적인 사례죠.
오다 노부나가와 인연이 있는 건물
오다 노부나가와 인연이 있는 건물은 지금의 일본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필승을 기원한 아쓰타 신궁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 2만5천에 맞서 고작 4천 명뿐이었던 오다 군. 오케하자마 전투를 앞두고 노부나가가 승리를 기원한 곳이 아쓰타 신궁입니다.
전투 승리의 답례로 쓰이지베이를 봉납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노부나가처럼 인생을 건 큰 승부를 앞두고 필승 기원을 하고 싶다면, 한 번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천하통일의 거점·기후성
노부나가의 장인이기도 한 사이토 도산의 거성이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노부나가의 천하통일 거점이 된 기후성.
현재는 사료 전시실이 있어 노부나가와 기후성 관련 사료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노부나가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성이죠.
오다 노부나가가 방화 공격을 한 히에이산 엔랴쿠지
노부나가의 적이던 아사쿠라 가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불타 버린 엔랴쿠지지만, 노부나가 사후 여러 무장의 도움으로 복구됐습니다.
현재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귀중한 문화재 전시도 있어, 일본 불교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들러볼 만한 관광 명소입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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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의 꿈을 합리적·혁신적인 방식으로 좇은 카리스마 오다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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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가 자란 나고노성의 후신인 나고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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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자마 전장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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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노 전투에서 활약한 화승총 이미지
오다 노부나가 프로필
- 이름
- 織田 信長(おだ のぶなが)
- 출생
- 1534년
- 사망
- 1582년
- 향년
- 48세
- 출생지
- 오와리국(현재의 아이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