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이코 천황이 즉위한 593년부터 헤이조쿄로 천도한 710년까지를 ‘아스카 시대’라고 부릅니다.
불교 전래와 함께 다양한 문화·정책·사고방식이 일본에 전해지며 여러 면에서 일본이 크게 바뀐 시기입니다.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율령 국가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한 것도 아스카 시대였습니다.
일본이 어떻게 변했고, 천황 중심의 율령 국가가 되는 기반을 어떻게 다졌는지 돌아보겠습니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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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 태자를 중심으로 한 국가 만들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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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령 국가의 출발점이 된 ‘다이카 개신’이 단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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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해외 원정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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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위를 둘러싼 후계자 다툼 ‘진신의 난’이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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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중심의 율령 국가로 바꾸기 위한 정책이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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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앙을 두텁게 한다는 목적 아래 다양한 사찰이 세워진다
아스카 시대의 흐름
아스카 시대의 대표 인물을 꼽자면 ‘쇼토쿠 태자’입니다.
쇼토쿠 태자는 여러 일화가 전해지는 위인이지만, 무엇보다 천황 중심의 율령 국가를 지향한 정책을 추진한 점이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전래와 쇼토쿠 태자의 정책을 계기로 일본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율령 국가를 지향해 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불교 전래와 쇼토쿠 태자의 천황 중심 국가 만들기

고분 시대 말기부터 아스카 시대 전기에 걸쳐 일본에 전래된 불교는 권력 다툼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호족들 사이에서 불교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리며 파벌이 생깁니다.
파벌 싸움은 조정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권력 투쟁 속에서 숭불파(불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의 소가노 우마코가 부상합니다.
조정 내 최대 실력자가 된 소가노 우마코가 옹립한 스이코 천황이 즉위하면서 아스카 시대가 시작됩니다.
여성이었던 스이코 천황은 꼭두각시가 되지 않기 위해 보좌역인 섭정이라는 지위를 만들고 쇼토쿠 태자를 임명합니다.
소가노 우마코와 스이코 천황의 권력, 그리고 쇼토쿠 태자의 역량을 바탕으로 국력을 강화하는 개혁이 시작됩니다.
천황 아래에 유능한 관리를 모아 일하게 하기 위해, 천황을 위해 일하는 마음가짐을 정리한 ‘십칠조 헌법’과 개인 능력에 따라 12단계로 나눈 조정의 서열을 나타내는 ‘관위 12계’ 등의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뛰어난 정치력과 높은 문화를 가진 수(중국)와의 교류를 위해 쇼토쿠 태자는 수에 사절을 파견합니다.
이 사절은 ‘견수사’라 불리며, 견수사와 함께 학생과 승려도 수로 건너갔습니다.
율령 국가의 출발점 ‘다이카 개신’

천황 중심의 국가 만들기를 추진하던 쇼토쿠 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소가노 우마코의 뒤를 이은 소가노 에미시와 그의 아들 소가노 이루카가 실권을 장악합니다.
실권을 쥔 두 사람은 천황을 경시하는 듯한 행동이 두드러졌고, 조정 안에서 소가 씨에 대한 불만이 커져 갑니다.
소가 씨에 대한 불만이 정점에 이르자,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와 나카오에노 오지가 중심이 된 반(反)소가 세력은 ‘잇시의 변’을 일으킵니다.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와 나카오에노 오지는 소가노 이루카를 황거 안에서 암살하고, 소가노 에미시도 자결하게 해 소가 씨를 멸망시켰습니다.
잇시의 변을 주도한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와 나카오에노 오지는 중국(수·당)에서 정치와 문화를 배운 유학생들과 함께,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 구축을 목표로 정치 개혁을 진행합니다.
그 개혁 속에서 토지·백성을 천황이 직접 지배하고, 재정도 천황에게 모이게 하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잇시의 변에서 시작된 정치 개혁은 ‘다이카 개신’이라 불리며, 율령 국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외정 ‘백강 전투’

중앙집권 국가 구축을 추진하던 일본은 해외 정세 변화로 처음으로 외정을 경험합니다.
당(중국)은 신라(한반도 남동부)를 거느리고 백제(한반도 남서부)로 무력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패한 백제는 긴밀한 관계였던 일본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백제의 요청에 응하는 것은 당과 신라를 적으로 돌리는 것을 뜻합니다.
당은 동아시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국이라, 교전해 패할 경우 백제뿐 아니라 일본도 국가 존망의 위기에 놓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당·신라에 승리한다면 일본은 백제를 속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고심하던 사이메이 천황은 백제를 돕기 위해 외정을 결단합니다.
사이메이 천황은 직접 군을 이끌고 수도를 떠나지만, 출정 직전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들인 나카오에 황자가 뜻을 이어 일본군 대장으로 출정하면서, 일본 최초의 대외 전쟁인 ‘백강 전투’가 시작됩니다.
원군으로 해로를 통해 파견된 일본군은 당·신라 연합군의 전략과 자연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하며 대패합니다.
덴지 천황이 된 오오에 황자는 당의 침공에 대비해 다양한 방어책을 세웠습니다.
방위에 필요한 인원과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 규모의 호적 ‘고고년적’을 작성합니다.
규슈 해안에 미즈키를 쌓고 병사를 배치했습니다.
나아가 사방이 비와호와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인 오미·오쓰궁으로 천도했습니다.
다만 당의 한반도 지배 야망이 드러나며 신라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당·신라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당의 침공을 받지 않았습니다.
고대 최대의 내란·진신의 난

아들인 오토모 황자에게 황위를 잇게 하고 싶었던 덴지 천황.
하지만 당시의 규정으로는 동생인 오오아마 황자가 정당한 후계자였습니다.
덴지 천황에게서 계승 의사를 확인받은 오오아마 황자는 자신의 신변이 위험하다고 느껴 계승을 사양합니다.
눈에 띄지 않게 나라의 요시노로 옮겨 지냅니다.
덴지 천황이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 오오아마 황자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됩니다.
오오아마 황자는 몸을 지키기 위해 각지의 호족을 아군으로 끌어들여 거병하고 ‘진신의 난’을 일으킵니다.
진신의 난은 고대 최대의 내란이라 불릴 만큼 큰 전란이었습니다.
대규모 내란은 오토모 황자를 자결로 몰아넣은 오오아마 황자의 승리로 끝납니다.
오오아마 황자는 덴무 천황으로 즉위합니다.
황후와 황자들을 중요한 직무와 지위에 앉히며,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황친 정치)를 확립했습니다.
진신의 난으로 덴무 천황을 위협할 정도의 거대 세력을 가진 호족도 일소됩니다.
편에 섰던 지방 호족들은 천황을 위협할 만큼의 힘이 없었고, 무력으로 황위를 쟁취한 덴무 천황에게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율령 국가의 성립

덴무 천황은 ‘다이카 개신’의 방침을 계승해 천황 중심의 국가 만들기를 추진했습니다.
토지·백성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당의 지배 체제와 율령제를 도입합니다.
현재의 제도에 비유하자면 형법·민법·상법·행정법 등, 일본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덴무 천황 사후에는 황후에서 천황으로 즉위한 지토 천황이 그 방침을 이어받습니다.
율령 국가로서 체제를 착실히 정비했고, 지토 천황의 딸이 겐메이 천황으로 즉위합니다.
겐메이 천황은 율령제에 기반한 정치를 펼치는 중심지로 당의 장안을 참고해 건설한 헤이조쿄로 천도하며, 나라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아스카 시대의 문화
아스카 시대의 문화는 한반도의 백제·고구려를 통해 전해진 중국 문화와, 인도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국제색 짙은 문화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스카 시대의 문화는 시기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불교 전래로 시작된 ‘아스카 문화’와 다이카 개신 이후의 ‘하쿠호 문화’.
각 문화의 특징을 중심으로 아스카 시대 문화를 소개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기술이 전해진 ‘아스카 문화’

불교 전래부터 다이카 개신까지의 문화를 ‘아스카 문화’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영향이 강한 것은 물론, 인도와 페르시아·그리스·실크로드 주변 국가의 영향까지 받은 건축물과 불상이 특징적입니다.
견수사와 백제를 통해 전해진 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건축·토목·정원·조각·회화·공예·예능 등 다양한 문화였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같은 사상·종교도 아스카 문화 시기에 일본으로 들어옵니다.
호류지와 오층탑을 중심으로 한 아스카 문화를 상징하는 ‘사이인 가란’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내에도 불상과 불구가 모여 있으며, 금당의 본존 석가삼존상과 백제관음당의 백제관음상·다이호조인의 다마무시 주시 등도 아스카 문화의 대표작입니다.
불교 신앙을 두텁게 한 ‘하쿠호 문화’

다이카 개신부터 헤이조쿄 천도까지, 후지와라쿄를 중심으로 꽃핀 하쿠호 문화.
국가적으로 불교 신앙을 두텁게 하기 위해 다양한 사찰이 세워지고 불상도 활발히 제작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야쿠시지의 금당 약사삼존상, 고후쿠지의 동조 불두는 특히 유명합니다.
백제에서 많은 귀족·문인이 망명해 온 영향도 있어, 덴지 천황 이후 궁정에서는 한시문이 지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래전부터 구전되던 가요도 한시의 영향을 받아, 5음·7음을 기본으로 하는 장가·단가 형식으로 변해 갑니다.
7세기부터는 한자를 이용해 일본어를 표기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와카가 성립했고,
귀족 가운데 와카를 짓는 이들도 나오면서 일본다운 문학이 탄생합니다.
아스카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스팟
아스카 시대의 불교 미술·불상과 고분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국보·중요문화재·특별사적으로 지정돼 공개되고 있습니다.
아스카 시대에 활약한 덴지 천황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도 남아 있습니다.
아스카 시대에 관심이 생겼다면,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스팟을 방문해 보세요.
아스카 시대 불교 미술을 즐길 수 있다! 나라 국립박물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국립박물관으로 1895년(메이지 28)에 개관. 아스카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까지의 일본 불교 미술을 중심으로 불상과 공예품 등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도다이지·고후쿠지·가스가타이샤 등에 둘러싸인 나라 공원 한쪽에 있어, 여유로운 환경에서 불교 미술과 그 배경에 있는 풍부한 역사·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스카 시대 대신의 고분이 남아 있는 ‘아베 몬주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
645년 다이카 개신 때 좌대신이 된 아베노 구라하시마로가 아베 일족의 씨족 사찰로 창건했습니다.
‘니시 고분’은 아스카 시대에 조성된 국가 특별사적. 아베노 구라하시마로의 무덤으로 전해지며, 내부는 645년 창건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축조 기술의 아름다움은 일본 최고라고도 합니다.
아스카 시대에 역량을 발휘한 덴지 천황을 모신 ‘오미 신궁’
667년부터 5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오미 오쓰궁 터에 자리한 오미 신궁.
나카오에 황자로서 다이카 개신에 참여하고, 나라의 아스카에서 오미의 오쓰로 천도한 제38대 덴지 천황을 제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전국에 16곳 있는 칙제사 중 하나로, 매년 4월 20일 예제에는 천황의 명을 받은 칙사가 궁중에서 파견되었습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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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호류지 오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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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에 전래된 불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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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개신 모의가 이뤄진 곳으로 알려진 탄잔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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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에 쌓은 가네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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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의 난’ 결전지·세타 가라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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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문화를 상징하는 ‘호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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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무 천황과 지토 천황의 합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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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호 문화를 대표하는 금당 약사삼존상
연혁
- 592년
- 스슌 천황이 암살되고, 스이코 천황이 즉위
- 593년
- 쇼토쿠 태자가 섭정이 됨
- 603년
- 관위 12계를 제정
- 604년
- 십칠조 헌법을 제정
- 607년
- 쇼토쿠 태자가 오노노 이모코를 수에 파견, 양제에게 국서를 제출
- 645년
- 나카오에 황자 등이 반소가 세력으로 소가 씨를 멸망시키고, 다이카 개신이 시작됨
- 653년
- 견당사 출발
- 663년
- 백강 전투에서 당·신라 연합군에 대패
- 672년
- 진신의 난 발발
- 673년
- 덴무 천황 즉위
- 690년
- 지토 천황 즉위
- 701년
- 다이호 율령 제정
- 708년
- 호류지가 재건됨
- 710년
- 헤이조쿄로 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