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바타 야스나리
근·현대 일본 문학의 정점에 선 작가·문예평론가. 일본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다이쇼 시대부터 전후에 걸쳐 활약한 작가다. 일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과 미의식을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다양한 경험을 작품에 담고 창작에 삶을 바쳤지만, 마지막은 갑작스러운 자살이었다.
유서는 없었고, 자살에 이른 진짜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인물상을 생애·작품의 특징·일화로 함께 그려보자.
포인트
-
다이쇼부터 쇼와 전전·전후에 걸쳐 활약한 근·현대 일본 문학의 정점에 선 작가
-
「伊豆の踊子」「雪国」「山の音」「古都」 등으로 사랑받는다
-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
가와바타 야스나리 인물 연표
| 서기 | 사건 | |
|---|---|---|
| 1899년 | 오사카시 기타구 텐마에서 개업의 가와바타 에이키치의 장남으로 태어남 | |
| 1906년 | 토요카와 보통소학교 입학 | |
| 1912년 | 오사카부립 이바라키 중학교 입학 | |
| 1917년 | 제1고등학교 입학 | |
| 1918년 | 이즈로 여행을 떠나 유랑극단 일행과 동행 | |
| 1920년 |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입학 | |
| 1921년 | 도쿄대 학생 동인지 「新思潮」 발간. 「招魂祭一景」 발표 | |
| 1924년 | 도쿄대 졸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 단편소설 다수 발표 | |
| 1925년 | 「十六歳の日記」「孤兒的感情」 간행 | |
| 1926년 | 「 伊豆の踊子」「感情装飾」 간행 | |
| 1929년 | 「浅草紅団」을 신문에 연재 | |
| 1933년 | 「禽獣」「末期の眼」 간행 | |
| 1935년 | 「雪国」 발표. 가마쿠라로 이사 | |
| 1942년 | 「名人」 간행 | |
| 1943년 | 「故園」「夕日」「父の日」 간행 | |
| 1947년 | 「哀愁」 간행 | |
| 1948년 | 일본 펜클럽 제4대 회장 취임 | |
| 1949년 | 「しぐれ」「住吉」「山の音」「千羽鶴」「骨拾い」 간행 | |
| 1957년 | 국제 펜클럽 대회를 도쿄와 교토에서 개최 | |
| 1960년 | 「眠れる美女」 간행 | |
| 1961년 | 문화훈장 수훈 | |
| 1968년 |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 | |
| 1972년 | 아파트에서 가스관을 물고 자살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생애
14살에 천애고아가 된 뒤, 신감각파 작가로서 자신만의 문학을 밀고 나갔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즈시의 작업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파란만장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생애를 따라가 보자.
14살에 천애고아가 되다

1899년 오사카시 기타구 텐진바시에서 의사인 아버지 가와바타 에이키치와 어머니 겐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세 7개월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결핵이 악화되어, 부부는 어머니 친정 근처인 오사카시 히가시요도가와구로 이사한다.
어머니도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기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머니 친정에 맡겨진다.
하지만 1901년 아버지가, 1902년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조부모와 함께 오사카부 이바라키로 옮긴다.
그때 누나 요시코는 어머니 여동생의 시댁인 아키오카 가문에 맡겨져,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헤어지게 된다.
1906년에는 할머니가, 1914년에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천애고아가 된다.
신동이라 불리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는 예지력 같은 것이 있어, 잃어버린 물건의 위치나 내일 찾아올 손님을 맞히거나 날씨를 예보하는 등 작은 예언을 해 편리하다는 이유로 신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또 아버지의 허약한 체질을 물려받은 데다 미숙아로 태어나, 성장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병약했고 식사량도 적어 할머니가 솜으로 감싸듯 소중히 키웠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결석이 잦았지만 성적은 좋았고, 특히 작문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5·6학년이 되자 결석도 거의 없어졌고 성적은 1등, 그림도 잘 그렸다. 학교 도서관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읽었다.
작가 데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샤노코지 사네아쓰 등의 시라카바파, 가미츠카사 쇼켄, 에마 슈, 다니자키 준이치로, 도스토옙스키 등 여러 책을 즐겨 읽었다. 동급생의 작품이 지역 주간신문사 「京阪新報」에 실린 것을 계기로, 자신이 쓴 글을 활자로 찍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
「文章世界」 등에 단가를 투고했지만 낙선만 이어져 반응이 거의 없었고, 실의와 절망을 느꼈다.
마음을 다잡고 「京阪新報」를 찾아가 단편소설·단가를 실을 수 있게 된다.
이후 「中央公論」에 처녀작을 발표하며 중앙 문단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9살 가을, 이즈로 여행을 떠나 유랑극단과 동행했고, 훗날 「伊豆の踊り子」를 쓰게 된다.
이후 연이어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비평 활동도 활발히 하며 많은 신인을 길러냈고, 일본 펜클럽 회장과 국제 펜클럽 부회장으로 동서 문화 교류에 기여했다. 일본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일본근대문학관 설립에 힘쓰는 등 여러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갑작스러운 죽음

1972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파트 한 방에서 가스관을 물고 자살했다.
유서는 없었고, 자살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일본인 특유의 감수성과 마음을 정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해, 일본은 물론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소설 3편을 소개한다.
아름답고 시적인 소설 「雪国」
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 온천을 배경으로, 온천 마을에서 일하는 게이샤와 아내·자식이 있는 남성이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으로 일본의 사계절을 그려, 가와바타 야스나리 특유의 문체를 즐길 수 있는 명작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아름답게 그린 「伊豆の踊り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즈를 여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여행을 떠난 청년이 만난 14살 소녀에게 풋풋한 사랑을 품는 이야기다.
청년의 미묘한 마음의 흔들림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진 대표작.
해외에서도 영화화된 「眠れる美女」
회원제 클럽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든 젊은 여성과 함께 잠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眠れる美女」라는 이름의 숙소가 있고 주인공은 그곳을 찾는다.
젊은 여성의 몸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과거의 여성들과의 기억을 되짚어 간다.
관능적인 표현마저 아름답게 그려져,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영화화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일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도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일화로도 상상해 보자.
가만히 응시하는 버릇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날카로운 눈빛은 인상적이었고, 사람을 오랫동안 빤히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한 젊은 여성 편집자가 처음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둘이 마주 앉아 있었지만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했고, 결국 참지 못해 울어버렸다. 그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왜 그러세요?”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보통 사람이 하면 사기지만
「伊豆の踊り子」를 집필할 때 묵었던 료칸의 4년 반치 숙박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늘 외상으로 술자리를 다녔고, 외상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면 편집자나 작가 동료를 불러 대신 내게 했다.
애초에 그는 “돈은 돌고 돈다”는 생각이 강해 “있을 때는 내고, 없을 때는 안 내도 된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누군가 “긴자의 바는 계산이 비싸다”고 하자 “비싸면 안 내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비싸도 돈을 빌리거나 외상으로 해놓고 떼어버렸다.
어느 날 문예춘추 편집부를 찾아 당시 사장에게 “금고에 얼마 있나요?”라고 물었다.
사장이 “에? 300만 엔 정도는 있을지도…”라고 하자 “갖고 싶은 항아리가 있어요”라며 전액을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그는 문예춘추에서 책을 낸 적도, 원고를 기고한 적도 없었다.
이 빚은 사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빚을 지는 ‘스킬’만큼은 그야말로 천재적이었다.
돈은 돌고 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됐을 때는 7,000만 엔짜리 도미오카 텟사이의 병풍을 비롯해 총 약 1억 엔어치 미술품을 사들이며 “노벨상 상금으로 내면 되니 괜찮다”고 했지만, 노벨상 상금은 2,000만 엔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살한 뒤 국보·중요문화재 등 약 200점을 넘는 미술품이 남았지만, 여기저기 빚과 외상도 함께 남아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언
근·현대 일본 문학의 정점에 선 작가는 어떤 명언을 남겼을까.
많은 명언 중 3가지만 골라 소개한다.
· 사람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을 때 사라지는 게 가장 좋다
· 죽을 때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 인간 최고의 미덕이다
· 떠나는 남자에게 꽃 이름 하나를 가르쳐 두세요. 꽃은 매년 반드시 핍니다.
어느 문장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미의식이 느껴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인연이 있는 건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을 쓰며 머물렀던 숙소를 소개한다.
직접 묵으며 문호의 기분을 느껴보자.
도쿄 스테이션 호텔
다이쇼 4년,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 안에 문을 열었다.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이자 도쿄의 상징인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는 헤이세이 24년에 창건 당시 모습으로 복원됐다.
1956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약 한 달 머물며 소설 「女であること」를 집필했다.
문호들에게 사랑받아 온 호텔로도 유명하다.
湯本館
유가시마는 아마기 산중, 가노강 계곡을 따라 자리한 조용한 온천지다.
짙은 초록 숲 사이로 온천 숙소가 점점이 모여 있고, 그중 湯本館은 노벨상 작가인 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伊豆の踊子」를 집필한 숙소로 유명하다.
사진
-

소설 「雪国」의 유명한 장면 이미지
-

외톨이가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시절 이미지
-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잘했던 작문 이미지
-

가와즈 나나타키에 있는 「伊豆の踊り子」 동상
-

가스 자살 이미지
가와바타 야스나리 프로필
- 이름
- 가와바타 야스나리
- 생년
- 1899년 6월 14일
- 몰년
- 1972년 4월 16일
- 향년
- 72세
- 출생지
- 오사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