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시대

통치 기관인 막부가 가마쿠라에 놓여 있던 1185년부터 1333년까지를 가마쿠라 시대라고 합니다.
약 150년간 일본 역사에서 처음으로 무사에 의한 정치가 이뤄진 시대였습니다.
일본 최초의 무가 정권이 어떻게 시작해 끝났는지, 당시의 정치와 문화와 함께 소개합니다.

포인트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다
  • 호조 마사코와 그의 아버지 호조 도키마사가 정치 주도권을 잡다
  • 가마쿠라 막부군과 조정의 전쟁 ‘조큐의 난’ 발발
  • 일본 최초로 몽골 제국의 침략 전쟁을 겪다
  •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 귀족 중심 문화에서 무사 중심의 ‘검소하고 강건한 문화’로 변화

가마쿠라 시대의 흐름

일본에서 처음으로 무가 정권이 탄생한 가마쿠라 시대. 무사가 정권을 잡으며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탄생부터 멸망까지의 흐름을 소개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막부를 열다

겐지야마 공원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동상
겐지야마 공원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동상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간토 일대의 무사를 규합하는 한편,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에게 군을 맡겨 ‘겐페이 전쟁’을 주도합니다.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케를 멸망시키며 정치 실권이 헤이시에서 겐지로 넘어갔고, 무사로서는 처음으로 세이이타이쇼군에 취임해 새로운 무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국정 운영은 교토의 조정에서 이뤄졌지만, 통치 기관이 처음으로 조정 밖에 놓이면서 ‘막부’라는 통치 체제가 탄생했습니다.
요리토모는 정무·재무를 담당하는 ‘구몬조(훗날 만도코로)’와 토지 분쟁 등 소송을 다루는 ‘몬추조’, 쇼엔을 관리하고 치안 권한을 행사하는 슈고·지토 등, 정치에 필요한 기관을 잇따라 마련합니다.
요리토모가 막부라는 통치 기관을 만들어내며 일본의 정치 형태는 크게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투쟁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의 ‘혼구’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의 ‘혼구’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막부에서는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시작됩니다.
주도권을 쥔 것은 요리토모의 아내 호조 마사코(北条政子)와 그의 아버지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였습니다.
요리토모가 사라진 뒤 막부에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없었기에, 중신들에 의한 13인의 합의제로 정치를 하게 됩니다.
요리토모에게는 미나모토노 요리에(源頼家)와 미나모토노 사네토모(源実朝) 두 아들이 있었지만 아직 어렸고, 요리에의 유모와 아내가 일본의 호족·무가인 히키씨(比企氏)였던 탓에 호조 측은 히키씨에게 정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습니다.
2대 쇼군은 요리에가 되었지만, 호조 마사코와 호조 도키마사에 의해 히키씨는 멸망하고
요리에 역시 쇼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3대 쇼군에는 동생 사네토모가 취임하고, 호조 도키마사가 초대 싯켄이 되어 막부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막부가 압도적 권위를 갖게 된 계기, 조큐의 난

고토바 상황이 유배된 오키 제도
고토바 상황이 유배된 오키 제도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 사후, 다시 인세이를 시작한 고토바 상황(後鳥羽上皇)은 전제 정치를 펼치며 결국 대립이 깊어지던 막부 권력자 호조씨 토벌에 나섭니다.
호조씨를 치려는 결정적 계기는 공가 문화에 이해가 깊었던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의 암살 사건이었습니다.
사네토모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호조씨는 고토바 상황의 아들을 쇼군에 앉히기로 밀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토바 상황은 이를 뒤집고 호조씨 토벌을 선언합니다.
그 선언을 계기로 가마쿠라 막부군과 조정의 전쟁인 ‘조큐의 난(承久の乱)’이 발발했습니다.
호조 요시토키(北条義時)의 아들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와 동생 호조 도키후사(北条時房) 등이 교토를 공격해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막부군이 압승, 조큐의 난은 종결됩니다.
호조 요시토키는 고토바 상황과 가까운 천황을 물리고 고호리카와 천황(後堀河天皇)을 즉위시킵니다.
조정군을 이끈 고토바 상황과 준토쿠 천황(順徳天皇)은 일본 각지로 유배되고, 난에 연루된 귀족들도 처형되었습니다.
막대한 영지가 막부의 소유가 되면서 조정의 권위는 크게 실추했습니다.

황족이 쇼군이 되는 ‘친왕 쇼군’의 탄생

친왕 쇼군 이미지
친왕 쇼군 이미지

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살해되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직계 혈통은 끊어졌습니다.
4·5대도 싯켄 탈취를 꾀한 세력과 손잡으면서 호조씨에 의해 쇼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호조씨가 원한 것은 국가 통합의 기준이 되는 ‘상징’으로서의 쇼군이었습니다.
즉, 조정과 막부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쇼군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6대 쇼군으로 고사가 천황(後嵯峨天皇)의 아들 무네타카 친왕(宗尊親王)이 임명됩니다.
황족이 처음으로 세이이타이쇼군이 되면서 쇼군 자리를 둘러싼 후계 다툼도 누그러졌고, 이후 ‘친왕 쇼군’이 정착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국토 방위전, 몽골 침입(원구)

지금도 남아 있는, 두 번째 원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루
지금도 남아 있는, 두 번째 원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루

후계 다툼이 누그러진 가마쿠라 막부였지만, 몽골 제국의 침략인 원구를 맞습니다.
몽골 제국 황제 쿠빌라이는 일본에 속국이 될 것을 요구했지만, 당시 싯켄이었던 호조 도키무네(北条時宗)는 이를 거부합니다.
격분한 쿠빌라이가 군대를 일본에 파견합니다.
일본으로서는 처음 겪는 침략 전쟁이었기에, 막부는 외교 정책이나 정보 수집을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은 고전했지만, 간신히 몽골군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두 번째 침략에서는 일본 측이 사전에 대규모 석루를 쌓아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었고, ‘가미카제’라 불린 폭풍우로 몽골군이 괴멸해 다시 한 번 국토를 지켜냅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막부를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 멸망에 기여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상
막부를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 멸망에 기여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상

두 차례 원구도 물리친 가마쿠라 막부였지만, 원구에서 싸운 무사들에게 포상으로 줄 영지를 마련하지 못해 불만이 커져갑니다.
한편 조정에서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이 즉위합니다.
고다이고 천황은 권력을 조정으로 되돌리기 위해 도막 운동을 계획하지만 막부에 새어 나갑니다.
고다이고의 움직임을 위험시한 가마쿠라 막부는 고다이고를 오키로 유배 보내고, 측근들은 참수합니다.
하지만 조정뿐 아니라 가마쿠라 막부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많았고, 특히 무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돼 있었습니다.
이를 기회로 본 고다이고 천황은 오키를 탈출해 다시 도막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를 눈치챈 막부는 막신이던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를 토벌에 보냈지만, 다카우지는 천황 측으로 돌아섭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조정을 감시하던 기관 ‘로쿠하라 탄다이(六波羅探題)’를 공략하고, 같은 시기 거병한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는 가마쿠라를 공략합니다.
이로써 가마쿠라 막부는 멸망했고, 무가 정권과 함께 가마쿠라 시대도 막을 내립니다.

가마쿠라 시대의 문화

가마쿠라 시대의 문화는 기존의 귀족 중심 ‘국풍 문화’에 무사의 정신과 중국 문화가 더해진 ‘검소하고 강건한 문화’로 변화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발전한 신흥 불교는 이후 일본의 종교와 도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가 정권의 영향으로 탄생한 힘찬 불상 조각

가마쿠라 시대 조각·도다이지 남대문의 금강역사 ‘아형’
가마쿠라 시대 조각·도다이지 남대문의 금강역사 ‘아형’

가마쿠라 시대는 ‘일본 조각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릴 만큼 조각이 두드러진 시기였습니다.
나라 시대 덴표 문화의 특징을 잇는 한편, 도다이지 남대문의 금강역사상처럼
사실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불상·신상·초상 조각이 가마쿠라 조각의 특징입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게이파’라 불리는 불사 집단 중에서도, 운케이·가이케이 등의 불상 조각은 가마쿠라 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중과 무사 사이에 퍼진 불교

가마쿠라 신불교 이미지
가마쿠라 신불교 이미지

가마쿠라 시대에는 가마쿠라 신불교라 불리는 정토종·정토진종·지종·니치렌종·린자이종·소토종 등 다양한 신흥 불교가 등장합니다.
가마쿠라 신불교의 특징은 그동안 불교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서민도 이해하기 쉬운 가르침이라는 점입니다.
전란과 기근이 이어진 불안한 시대 상황도 맞물려, 귀족을 포함한 전국민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비와호시가 노래로 퍼뜨린 이야기

헤이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로쿠하라미쓰지
헤이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로쿠하라미쓰지

가마쿠라 시대에는 헤이케모노가타리, 호겐모노가타리, 헤이지모노가타리처럼 무사가 주인공인 전란을 그린 군기물이 많이 탄생합니다.
이 작품들은 작자 미상의 경우가 많고, 비와호시(琵琶法師)라 불린 맹인 승려들이 비와 연주와 노래로 각지에 전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당시 글을 읽지 못하던 서민과 무사들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검소하고 강건한 무사의 문화

무사를 상징하는 일본도
무사를 상징하는 일본도

헤이안 시대까지 비교적 신분이 낮았던 무가의 지위는 가마쿠라 시대에 크게 높아졌습니다.
특히 동국 무사들 중에는 토지 개간을 위해 파견된 이들도 많아, 영주라 해도 실상은 가난한 생활을 강요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무사들의 검소한 일상이 가마쿠라 문화의 특징으로 짙게 반영되었고, 일상의 단련이기도 했던 이누오우모노·야부사메·카사가케 수련은 ‘기샤 산모쓰’로 불리며, 훗날 ‘궁마의 길’로 체계화됩니다.
공예품도 헤이안 시대까지의 화려한 것에서, 갑옷과 도검을 중심으로 실전을 중시한 것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가마쿠라 시대의 조금 독특한 풍습

귀족 중심 정치였던 헤이안 시대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중심으로 한 가마쿠라 무사가 정권을 잡으며 무가 정치로 사회가 크게 움직인 전환기였던 가마쿠라.
이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다운 조금 독특한 풍습도 있었습니다.

식생활도 소박했던 무사들

무가가 정권을 잡고 있었지만, 가마쿠라 시대 무사들은 검소한 생활을 모토로 삼았습니다.
현미를 즐겨 먹었고, 밥을 짓기보다 쪄낸 현미를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반찬은 구운 소금·된장·매실장아찌 중 하나와 구운 생선이었고, 기본은 하루 2끼.
전투나 여행처럼 체력이 필요할 때는 하루 3끼로 늘렸습니다.
이 습관이 일상화되며 오늘날의 하루 3끼로 이어졌다고도 합니다.
휴대식으로 현대의 ‘오니기리’에 해당하는 ‘톤지키(屯食)’가 생긴 것도 이 무렵입니다.

캇파 VS 원숭이

전쟁에 필요한 말을 지키기 위해 무사들은 원숭이를 길렀습니다. 왜일까요?
말이 캇파에게 습격당할 수 있는데, 그 캇파로부터 말을 지켜주는 존재가 원숭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원숭이는 말의 병을 고치거나 돌본다고도 전해져, 말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원숭이와 캇파의 싸움, 한 번 보고 싶지 않나요?

가마쿠라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스폿

가마쿠라 막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사적 스폿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역사를 전해주는 장소를 3곳으로 추려 소개해볼게요.

당대 권력자들이 공경한 ‘가마쿠라 고묘지’

4대 싯켄 호조 쓰네토키(北条経時)의 귀의를 받아 창건된 고묘지.
호조 쓰네토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대대로 싯켄이 공경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도 당시 권력의 비호를 받았습니다.
1698년에 세워진 대전은 현존 목조 건축물 중 가마쿠라 최대 규모로,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특유의 조각을 볼 수 있는 ‘도다이지’

도다이지는 나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가마쿠라 시대의 특징적인 조각을 볼 수 있어 꼭 방문하길 추천합니다.
가마쿠라 시대를 대표하는 ‘게이파’ 가운데 특히 유명한 운케이의 금강역사상은 높이 8m를 넘으며 국보로도 지정돼 있어, 놓치기 아깝습니다.

무장들의 신앙을 받았던 ‘와시노미야 신사’

간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녔다고 전해지는 와시노미야 신사.
가마쿠라 시대의 사서 ‘아즈마카가미’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신사입니다.
특히 무장들의 신앙이 두터워 호조씨와 아시카가씨 등의 보호를 받았고, 가마쿠라 막부가 본전을 재건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가 400석을 기진하는 등 시대마다 강력한 후원 속에서 지켜져 왔습니다.
고문서·거울·도검 등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역사 좋아한다면 한 번쯤 볼 가치가 있습니다.

사진

  • 가마쿠라 시대에 정권을 잡은 무사 이미지

    가마쿠라 시대에 정권을 잡은 무사 이미지

  • 겐지야마 공원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동상

    겐지야마 공원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동상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의 ‘혼구’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의 ‘혼구’

  • 고토바 상황이 유배된 오키 제도

    고토바 상황이 유배된 오키 제도

  • 친왕 쇼군 이미지

    친왕 쇼군 이미지

  • 지금도 남아 있는, 두 번째 원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루

    지금도 남아 있는, 두 번째 원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루

  • 막부를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 멸망에 기여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상

    막부를 배신해 가마쿠라 막부 멸망에 기여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상

  • 가마쿠라 시대 조각·도다이지 남대문의 금강역사 ‘아형’

    가마쿠라 시대 조각·도다이지 남대문의 금강역사 ‘아형’

  • 가마쿠라 신불교 이미지

    가마쿠라 신불교 이미지

  • 헤이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로쿠하라미쓰지

    헤이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로쿠하라미쓰지

  • 무사를 상징하는 일본도

    무사를 상징하는 일본도

연혁

1185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각국에 슈고·지토를 설치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
1199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사망, 미나모토노 요리에가 가독을 잇다
1200년
13인의 합의제 시작
1203년
히키 요시카즈 사건(比企能員の変)으로 히키씨 멸망
1204년
미나모토노 요리에 암살
1219년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구교에 의해 암살
1221년
조큐의 난 발발
1226년
구조 요리쓰네가 쇼군에 취임(셋케 쇼군의 시작)
1232년
고세이바이시키모쿠 제정
1246년
미야 소동 발생
1247년
호지 전투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