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쓰메 소세키
메이지 시대와 근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같은 명작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어린 시절 상처를 안고도 학업에 매진해 교직을 거친 뒤 소설가가 됐다.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시달리면서도 여러 명작을 계속 써냈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험이 밑거름이 된 작품들은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메이지 시대(1868~1912년)를 대표하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소개한다.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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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양자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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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매진해 영문학을 공부한 끝에 도쿄제국대학의 교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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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작가의 길을 걷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등 명작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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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2019년에 발행된 1,000엔 지폐의 초상으로 선정됐다.
나쓰메 소세키 인물 연표
| 서기 | 사건 |
|---|---|
| 1867년 | 에도 우시고메 바바시타 요코초의 명문가 막내로 태어남. 골동품 가게로 양자로 보내졌지만 곧 다시 데려와짐. |
| 1868년 | 신주쿠의 명문가로 양자로 보내짐 |
| 1876년 | 양부모가 이혼해 친가로 돌아옴 |
| 1889년 | 마사오카 시키를 만나 교류를 깊게 함 |
| 1890년 |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영문과 입학 |
| 1891년 | 도쿄제국대학 특대생이 됨 |
| 1895년 | 에히메현 마쓰야마의 마쓰야마중학교에 교사로 부임, 결혼 |
| 1899년 | 첫째 아이 출생 |
| 1900년 | 영국 유학 |
| 1903년 | 도쿄제국대학 문학대학 강사로 취임 |
| 1905년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발표 |
| 1906년 | 『도련님』 발표 |
| 1907년 |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 입사 |
| 1910년 | 위궤양으로 입원 |
| 1913년 | 신경쇠약과 위궤양 재발 |
| 1914년 | 『마음』 연재 시작 |
| 1916년 | 위궤양으로 사망 |
나쓰메 소세키의 생애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학업에 매진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시달리면서도 창작에 힘써 많은 명작을 남긴 나쓰메 소세키.
고뇌와 시련이 많았던 그의 삶을 소개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1867년, 에도(현재의 도쿄) 명문가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
어머니가 41세에 낳았지만, 당시에는 고령 출산이 수치로 여겨져 근처 골동품 가게로 양자로 보내졌다. 곧 다시 데려왔지만, 또 다른 명문가로 양자를 가게 된다.
하지만 양자로 간 집 사정으로 다시 친가로 돌아오게 된 나쓰메 소세키.
양자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 경험과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그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창작을 시작하게 한 마사오카 시키와의 만남
문학을 공부하던 나쓰메 소세키는 후대에 이름을 남긴 하이쿠·단카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만나 시를 통해 친분을 쌓았다.
교류를 이어가며 마사오카 시키의 시에 평을 쓰기도 하고, 보소반도 여행 경험을 한문으로 남기기도 하면서 창작도 조금씩 시작했다.
또한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정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힘써 대부분 과목에서 수석 성적을 거뒀다.

영국 유학으로 신경쇠약에 빠지다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에 입학한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을 공부해 대학원까지 진학한다.
졸업 후에는 파격적인 대우로 에히메현 마쓰야마시 중학교의 영어 교사로 초빙됐다.
결혼해 첫째 아이가 태어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던 그에게, 문부성에서 영어 연구를 위해 2년간 영국 유학을 가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처음엔 불만을 품어 사양하려 했지만, 주변의 설득과 영문학 연구도 허용된다는 점을 확인하고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을 통해 한문학과 서양 문학의 근본적 차이를 배우며, 그 배움은 그의 창작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의미 있는 배움도 있었지만, 훗날 “가장 불쾌한 2년이었다”고 말할 만큼 유학 생활은 고됐고, 원래 불안정하던 정신 상태는 더 흔들려 신경쇠약에 빠졌다.
유학 중이던 나쓰메 소세키는 경제적 곤궁과 외로움으로 날마다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 소문이 일본에도 전해졌고, 문부성이 귀국을 권하면서 힘겨운 영국 유학은 막을 내린다.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
귀국한 나쓰메 소세키는 고등학교와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과 강사가 된다.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과 강사가 된 첫 일본인이기도 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한 강의는 훗날 『문학론』, 『문학평론』, 『영문학형식론』으로 출간될 만큼 수준 높은 내용이었지만, 신경쇠약 악화로 교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신경쇠약으로 힘들어하던 그는 마사오카 시키의 제자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에게 기분 전환으로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잡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출간 후 한 달도 안 돼 품절될 만큼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가 책의 장정까지 신경 쓴 점도 인기에 한몫했을지 모른다.
이후에도 지금까지 명작으로 남는 『도련님』, 『풀베개』 등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아사히신문사 입사 후에도 인기작을 연이어 발표
나쓰메 소세키가 40세가 될 무렵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한다.
입사 후 발표한 소설 『양귀비풀(虞美人草)』도 인기와 평판이 높아, 이를 테마로 한 굿즈가 나올 정도였다.
이후에도 명작을 계속 쓰지만 위궤양이 악화되어 입원한다. 이즈에서 요양하던 중 대량 토혈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에게, 입원 중 박사학위 수여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학위를 보낸 것에 화가 나 반송해 버린다.
이후에도 위궤양 재발, 자녀와 절친의 죽음, 메이지 천황의 붕어가 겹치며 심신이 크게 쇠약해진다.
1916년 12월, 병세가 악화된 나쓰메 소세키는 세상을 떠난다.
1984년에는 명작을 남긴 점, 문화인 중 해외 인지도도 높았던 점이 평가돼 1,000엔 지폐의 초상으로 선정됐다.
나쓰메 소세키 초상의 1,000엔 지폐는 2019년에 발행이 중단됐고, 다음 초상으로는 노구치 히데요가 선정됐다.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3가지를 소개한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작품이니, 꼭 한 번 손에 들어 읽어보길 바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명작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와가하이’라고 부르는 수컷 고양이로, 이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관찰한 인간의 재미와 우스꽝스러움을, 유머 넘치는 독특한 말투로 풀어내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가 교사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 『도련님』이다.
도쿄에서 자란 고집 세고 정의감 강한 ‘도련님’이 에히메 마쓰야마의 학교로 부임한다.
부조리한 낡은 관습과 이를 지키는 교직원들의 비겁한 행동에 맞서 악전고투하는 ‘도련님’을 그린 소설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직장에서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지금도 사랑받는지도 모른다.
마음
나쓰메 소세키가 말년에 쓴 소설 『마음』은 학교 국어 수업에서 다뤄지는 경우도 많다.
네 인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미묘한 결, 과거의 잘못과의 갈등, 이기심을 그려낸다.
인간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명작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
생애와 대표작뿐 아니라 일화까지 알면 나쓰메 소세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일화 3가지를 골라 소개한다.
지고도 우기는 고집쟁이가 필명?
나쓰메 소세키의 ‘소세키(漱石)’는 필명이고, 본명은 긴노스케다.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漱石枕流(소세키침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쟁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 표현이 필명의 유래다.
아무리 스스로를 고집쟁이라 생각해도, 좋은 뜻이 아닌 말에서 필명을 따오는 경우는 드물다.
나쓰메 소세키는 고집만큼이나 조금 독특한 인물이었던 게 틀림없다.
도쿄대에 뇌가 보관돼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뇌가 지금도 도쿄대 의학부에 포르말린에 담겨 보관돼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다.
분석 결과 평균보다 무거웠고, 장기 기억과 주의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위인은 뇌부터 다를지도 모른다.
“I love you”를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번역하라고 가르쳤다
나쓰메 소세키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I love you”를 “달이 참 예쁘네요”로 옮겼다는 것이다.
영어 교사였던 그가 수업 중 학생이 “I love you”를 “我君を愛す”라고 번역하자 “일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달이 참 예쁘네요’ 정도로 번역해 둬라”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직설적 표현을 피하는 일본인의 기질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 일화의 진위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생길 정도로 감수성과 표현력이 풍부한 인물이었던 건 분명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명언
나쓰메 소세키의 명언을 몇 가지 소개한다.
부드러운 말투이면서도 날카로운 통찰과 시니컬한 시선으로 인간을 분석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자신과 인간의 강함을 믿게 하는 말도 있어, 어린 시절 경험과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여기서 소개한 것 외에도 많은 명언이 있으니, 꼭 찾아보길 바란다.
- 애교라는 건 말이지, 나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뜨리는 부드러운 무기야.
- 대부분의 남자는 겁쟁이지, 막상 때가 되면.
- 인간의 목적은 태어난 본인이, 본인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어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와 인연이 있는 스폿
나쓰메 소세키 소설의 무대가 된 장소와 그가 찾았던 온천을 소개한다.
소설을 읽으며 인연 있는 스폿을 함께 둘러보고,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1. 도련님 가라쿠리 시계
가라쿠리 시계는 도고온천 본관 최상부에 있는 북루 ‘신로카쿠(振鷺閣)’를 모티프로 한 외관이 특징이다. 정각이 되면 도고온천다운 음악에 맞춰, 마쓰야마를 배경으로 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위로 올라온다.
2. 엔가쿠지
기타카마쿠라역에서 내리자마자 있는 엔가쿠지는 린자이종 엔가쿠지파의 총본산이다.
개기는 가마쿠라 막부 8대 집권 호조 도키무네로, 선의 보급과 몽골 침략으로 인한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해 고안 5년(1282)에 창건됐다.
총문에서 이어지는 돌계단을 올라,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도 등장하는 산몬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불전에는 본존인 보관석가여래상이 모셔져 있으며, 위엄과 자비가 깃든 표정을 당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도고온천 후나야
에도 시대인 1627년 무렵 창업. 마쓰야마와 인연이 깊은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비롯해 많은 문인·저명 인사를 대접해 온 노포 온천 료칸이 ‘도고온천 후나야’다.
총 58실 객실은 스키야즈쿠리 특별실을 비롯해 일본식 객실·일본식+서양식 객실·서양식 객실 등 다양한 타입을 갖추고, 편안한 스테이를 제공한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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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와 근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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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어린 시절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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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와의 만남이 창작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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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에 빠질 만큼 힘들었던 경험이기도 한 영국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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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 삼아 창작에 몰두하며 명작을 연이어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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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엔 지폐의 초상으로 뽑힐 만큼 인지도가 높은 작가가 됐다
나쓰메 소세키 프로필
- 이름
- 나쓰메 소세키
- 본명
- 나쓰메 긴노스케
- 출생지
- 도쿄도
- 출생
- 1867년 1월 5일
- 사망
- 1916년 12월 9일
- 저작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산시로』·『그리고』·『마음』·『명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