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알면 일본 여행이 더욱 즐거워집니다!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해설
관광 명소와 역사적 건축물 등 여행 중 자주 방문하는 장소의 배경을 알면 일본을 더욱 깊이 즐길 수 있습니다.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바로 일본의 역사입니다.
원시 시대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일본 역사의 흐름과 시대별 주요 사건을 한꺼번에 소개합니다.
일본을 여행하기 전에 일본 역사를 공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본 역사 연표
먼저 일본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의 레이와 시대까지 크게 15개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대 구분에는 여러 설이 있으므로 여기에서 소개하는 구분은 다양한 견해 중 하나로 참고해 주세요.
| 시대 | 서기 |
|---|---|
| 구석기 시대 | 기원전 100,000년경~기원전 18,000년경 |
| 조몬 시대 | 기원전 약 18,000년경~기원전 300년경 |
| 야요이 시대 | 기원전 300년~서기 250년 |
| 고훈 시대 | 250년경~592년 |
| 아스카 시대 | 592년~710년 |
| 나라 시대 | 710년~794년 |
| 헤이안 시대 | 794년~1185년 |
| 가마쿠라 시대 | 1185년~1333년 |
| 무로마치 시대 | 남북조 시대: 1333년~1392년·센고쿠 시대: 1467년~1573년·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73년~1603년 |
| 에도 시대 | 1603년~1868년 |
| 메이지 시대 | 1868년~1912년 |
| 다이쇼 시대 | 1912년~1926년 |
| 쇼와 시대 | 1926년~1989년 |
| 헤이세이 시대 | 1990년~2019년 |
| 레이와 시대 | 2019년~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 시대 ‘구석기 시대’
아시아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던 일본 열도에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쫓아 이동해 정착하면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골각기를 이용해 사냥과 채집을 하며 매일 먹을거리를 마련했습니다.
늘 사냥감을 찾아 이동하며 생활했습니다.

정착 생활과 문화가 시작된 ‘조몬 시대’
토기가 등장하면서 구석기 시대에서 조몬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토기의 발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다양해지고 지구 온난화로 열매와 물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정착 생활도 시작되었습니다.
식량을 마련하고 이주하는 데 드는 시간이 줄어 여가가 생기자 도구와 마가타마 같은 문화적 도구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농경과 국가 형성이 시작된 ‘야요이 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벼농사가 보급되며 농경 문화가 확립된 야요이 시대입니다.
식량 생산량이 소비량을 넘어서 잉여분을 비축하게 되자 사람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생겼습니다.
가난한 마을이 부유한 마을을 습격하는 분쟁이 잦아지면서 무력이 강한 마을이 약한 마을을 지배하고 작은 나라를 형성해 갔습니다.
작은 나라 사이에서도 전쟁이 벌어지며 일본 최초의 대규모 전쟁인 ‘왜국대란’이 발발했습니다.
‘왜국대란’은 무녀인 ‘히미코’를 ‘왜국’의 왕으로 세우면서 끝났습니다.
이후 히미코가 다스리는 ‘야마타이국’을 중심으로 ‘야마타이국 연합’이 형성되었고 ‘야마토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정권이 성립된 ‘고훈 시대’
히미코를 중심으로 야마토 지방(현재의 나라현)의 권력자들이 만든 거대한 세력 ‘야마토’가 등장했습니다.
규슈에서 도호쿠 지방 남부까지 지배하고 규슈를 발판으로 한반도 남부에 진출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철뿐 아니라 발달한 문화도 받아들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한자도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자와 기술, 정치 체계를 받아들인 ‘야마토 정권’과 일본 문화는 크게 발전했고 국가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율령 국가를 지향한 ‘아스카 시대’
율령 국가를 세우기 위해 ‘쇼토쿠 태자’를 비롯한 여러 유력자가 힘쓴 시대가 ‘아스카 시대’입니다.
‘스이코 천황’, ‘소가노 우마코’, ‘쇼토쿠 태자’가 국력을 강화하는 개혁을 시작해 천황 중심의 제도와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소가노 에미시’와 그의 아들 ‘소가노 이루카’가 천황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조정 내부에 두 사람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와 나카노오에 황자를 중심으로 한 반소가 세력이 ‘을사의 변’을 일으켜 소가 일족을 멸망시켰습니다.
‘을사의 변’에서 승리한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와 나카노오에 황자는 천황이 토지와 백성을 직접 지배하고 재물을 천황에게 모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을사의 변’으로 시작된 정치 개혁은 ‘다이카 개신’이라 불리며 중앙 집권 국가이자 율령 국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율령제에 따른 정치를 펼칠 중심지로 당나라 장안을 본떠 건설한 헤이조쿄로 수도를 옮기면서 나라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권력이 집중된 조정에서 치열한 권력 다툼이 시작된 ‘나라 시대’
천황을 군주로 하는 중앙 집권 정치가 시작된 나라 시대입니다.
정치의 중심인 조정에서는 권력 다툼이 치열해 정치 체제가 불안정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귀족인 ‘후지와라 씨’가 세력을 키워 갔습니다.
아스카 시대에 활약한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의 아들 ‘후지와라노 후히토’는 자신의 딸을 ‘몬무 천황’과 혼인시켜 황족과 친척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아들이 ‘쇼무 천황’이 되면서 후지와라 씨는 조정 내 권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후지와라 씨뿐 아니라 사찰도 세력을 키우자 조정과 사찰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두기 위해 헤이안쿄로 천도했습니다.

권력이 귀족에서 무사로 이동한 ‘헤이안 시대’
아스카 시대부터 정치의 중심에 있던 귀족들은 헤이안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특히 후지와라 씨는 자신의 후손을 천황으로 세우며 압도적인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호적과 토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세금을 거둘 수 없게 되면서 재정이 악화되었습니다.
한편 농지를 개척해 부를 축적한 호족들은 자신의 토지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사람을 고용하거나 농민을 무장시키며 무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치안을 유지할 재력이 없던 조정은 각지의 호족에게 치안 유지 역할을 맡겼고, 호족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힘을 키운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조정이 아닌 다른 호족들이 이를 진압했고, 호족인 ‘헤이시’가 조정에서도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황족이 또 다른 호족인 ‘겐지’와 손잡고 ‘헤이시’를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헤이시’를 멸망시킨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열면서 가마쿠라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무사 정권이 탄생한 ‘가마쿠라 시대’
헤이안 시대까지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조정’이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부터는 ‘무사’의 정점인 ‘쇼군’을 중심으로 ‘가마쿠라 막부’가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나라를 다스리던 조정은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막부 타도를 목표로 한 ‘조큐의 난’을 일으켰지만 불과 약 1개월 만에 막부에 패했습니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지만 몽골군의 침공을 막은 각지의 무사들에게 포상인 ‘영지’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지배력이 약해졌습니다.
가마쿠라 막부에 불만을 품은 무사들과 막부 신하였던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고다이고 천황’이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면서 가마쿠라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권력자가 잇달아 바뀐 ‘무로마치 시대’
200년 넘게 이어진 무로마치 시대를 다음 3개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 남북조 시대
- 센고쿠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무로마치 시대 전체의 흐름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기사도 확인해 주세요.
두 천황이 동시에 존재해 혼란이 극에 달한 ‘남북조 시대’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고다이고 천황’은 무사들을 냉대한 탓에 불만을 샀고,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중심으로 한 반란 세력에 패했습니다.
승리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무로마치 막부를 세웠고 정치의 중심은 다시 ‘천황’에서 ‘쇼군’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패배한 ‘고다이고 천황’은 포기하지 않고 나라의 요시노에 조정을 열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 두 조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다이카쿠지 계통의 고다이고 천황이 다스리는 ‘남조’
-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옹립한 지묘인 계통의 고묘 천황이 다스리는 ‘북조’
이후 조정뿐 아니라 무로마치 막부도 분열했습니다.
각지의 무사 집단을 통솔하지 못하게 된 무로마치 막부는 지역의 유력 무사를 치안 유지 담당인 ‘슈고’로 임명했습니다.
각지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슈고’의 권한을 강화한 결과, 임명된 무사들은 지역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이 성과를 거두면서 무로마치 막부의 힘은 강해졌고 남조와 북조를 통일한 뒤 막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력으로 영토와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던 ‘센고쿠 시대’
후계자 다툼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지배력은 계속 약해진 반면 각지의 유력 무사들은 힘을 키워 갔습니다.
그리고 조정으로부터 각 지역의 자치를 위임받았던 ‘슈고 다이묘’가 지역의 유력 무사에게 패해 영토와 권력을 빼앗기는 ‘하극상’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천하 통일을 이룬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하극상으로 권력을 얻은 ‘센고쿠 다이묘’ 가운데 ‘오다 노부나가’가 두각을 나타내 천하 통일을 추진했지만 부하의 반란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세력을 키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현재의 도쿄에 에도 막부를 열면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이 200년 넘게 이어진 ‘에도 시대’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의 권력을 강화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산킨코타이와 무가제법도 등의 제도로 다이묘의 경제력과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제도를 만들어 신분을 고정했습니다.
제도뿐 아니라 유교의 성리학을 막부 사상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아 에도 막부가 지배하고 관리하기 쉬운 사상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봉건적이면서 중앙 집권적인 정책이 성공해 평화로운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기독교 포교를 막기 위해 쇄국하던 에도 막부는 개항을 요구한 미국 해군 페리 제독의 내항을 계기로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조정의 허가 없이 개항한 막부에 대한 불만과 개항 이후의 혼란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에게 권력을 돌려주려는 존왕양이 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존왕양이 운동을 더는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한 에도 막부의 쇼군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하는 ‘대정봉환’을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에 불만을 품은 막부군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신정부군에 의해 항복하면서 에도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현대 생활 방식의 기반이 마련된 ‘메이지 시대’
막부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조정은 서구 국가보다 뒤처진 일본을 근대 국가로 성장시키기 위해 메이지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때 에도의 명칭이 도쿄로 바뀌었습니다.
서구의 제도를 도입하고 에도 시대의 여러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부국강병을 구호로 내세워 서구 국가에 뒤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문화는 서민에게도 퍼져 사람들의 복장과 식생활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근대 국가를 향한 개혁이 진행된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에 접어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일본도 참전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일본은 해외 수출이 늘면서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전후 공황이라는 불황이 닥치면서 국민의 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한편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확산되고 다양한 사회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1925년에 ‘보통선거’가 성립되면서 국정을 운영하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요한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생활·가치관·문화·경제가 격변한 ‘쇼와 시대’
‘전후 공황’ 뒤에 일어난 ‘쇼와 금융 공황’과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대지진 공황’에 이어 ‘세계 대공황’까지 닥치면서 일본 전체가 가난해졌습니다.
일본을 재건하려던 군부가 독단적으로 만주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의 패전이 결정되었고, 1945년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며 전쟁이 끝났습니다.
일본은 GHQ의 통치 아래 새로운 국가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미군과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호황을 맞았습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호황도 끝나 불황에 접어들었지만 제조업의 발전으로 다시 경기가 좋아졌습니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이 단숨에 향상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엔저 정책을 계기로 일본은 버블 시대라 불리는 초호황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경제·기술·문화가 빠르게 변화한 ‘헤이세이 시대’
주식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가치가 과도하게 팽창한 초호황 속에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버블이 곧 붕괴하면서 다시 불황에 빠졌습니다.
국민의 평균 연봉도 낮아지며 경제적으로 침체했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보급된 것도 헤이세이 시대입니다.
불황이 계속되던 일본에서는 리먼 쇼크의 영향으로 닛케이 평균 주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호황기에 만들어진 성공 모델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근무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팬데믹으로 격동의 막을 올린 ‘레이와 시대’
2019년 5월 1일 시작된 ‘레이와 시대’에는 생활 방식이 더욱 변화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ZOOM으로 진행하거나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외식과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이전까지 가능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생활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생활 방식의 변화로 여러 업계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외식업과 관광업 등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정리
일본의 구석기 시대부터 레이와 시대까지 주요 사건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한꺼번에 소개했는데 어떠셨나요?
관심이 가는 시대가 있다면 각 시대를 자세히 소개한 기사도 함께 확인해 주세요.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관광 명소도 함께 소개하므로 다음 일본 여행지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