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도 시대
에도 막부의 철저한 지배와 관리로 평화가 이어지고 서민 문화가 번성한 시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이대장군에 임명되어 에도 막부를 연 때부터 에도 막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1868년까지 약 260년간을 에도 시대라고 합니다.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그 특징과 인물 등을 통해 소개합니다.
※에도=현재의 도쿄
포인트
-
에도 시대는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약 260년간 이어졌습니다
-
에도 막부의 봉건적이면서 중앙집권적인 지배로 안정된 시대였습니다
-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였기 때문에 서민 중심의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
외국과의 외교와 무역을 제한하는 쇄국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특징
먼저 에도 시대가 어떤 특징을 지닌 시대였는지 소개합니다.
안정된 정권 아래 평화가 오랫동안 이어진 시대

지방에서 권력을 가진 다이묘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에도 막부는 산킨코타이와 무가제법도 등의 제도를 마련해 다이묘의 경제력과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막부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서민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제도에 따라 무사·농민·장인·상인 등 직업별로 신분이 나뉘었으며, 그 신분은 고정되었습니다.
제도를 통한 지배뿐 아니라 유교의 성리학을 막부 사상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아 에도 막부가 지배하고 관리하기 쉬운 사상을 확산했습니다.
이러한 봉건적이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책이 성공해 에도 막부의 권력이 절대적인 수준에 이르면서, 오랫동안 계속된 전국 시대는 평화로운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기독교 포교를 막기 위한 ‘쇄국’

해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기독교 포교도 확대되었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에도 시대의 신분 제도와 상충했습니다.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 에도 막부의 통제가 어려워지므로 기독교 포교를 막기 위해 해외 무역과 일본인의 해외 도항을 제한하는 ‘쇄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쇄국’이라고 해도 모든 무역과 도항을 금지한 것은 아니며, 막부의 통제 아래 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쇄국은 200년 넘게 이어졌지만 미국 해군 제독 페리가 개항을 요구했고, 그 무력을 두려워한 에도 막부가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끝났습니다.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에 꽃핀 조닌 문화

이전 시대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문화가 번성했지만, 에도 시대에는 서민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에도 막부의 철저한 관리로 정세가 안정되고 교통망이 정비되었으며, 신분이 고정되면서 서민에게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에도 시대 전반에는 오사카와 교토의 부유한 상인과 무사를 중심으로 화려하고 활기찬 ‘겐로쿠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겐로쿠 문화에서는 하이카이의 마쓰오 바쇼, 우키요에의 히시카와 모로노부, 화가 오가타 고린, 인형 조루리의 지카마쓰 몬자에몬, 가부키의 이치카와 단주로가 활약했습니다.
에도 시대 후반에는 오사카와 교토가 아닌 에도의 서민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에도에서 번성한 ‘가세이 문화’는 겐로쿠 문화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화려함이 줄었으며, 에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가세이 문화에서는 우키요에의 가쓰시카 호쿠사이·안도 히로시게·도슈사이 샤라쿠, 골계본의 짓펜샤 잇쿠, 하이카이의 요사 부손이 활약했습니다.
에도 시대에 활약한 인물
에도 시대에 활약한 인물을 알면 당시의 정세를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에도 시대에 활약한 인물 3명을 소개하지만, 이 밖에도 활약한 인물은 많습니다.
에도 시대를 더 알고 싶다면 인물을 중심으로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랫동안 이어진 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에도 막부를 세운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을 인질로 보냈으며 독립한 뒤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종하면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해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없었다면 에도 시대도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 일본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도 막부를 반석 위에 올린 도쿠가와 이에미쓰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제3대 쇼군으로, 막부 체제를 확립하고 다이묘 지배를 강화했으며 산킨코타이를 제도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에도 막부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없었다면 에도 막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쇄국으로 모든 분야의 발전을 늦췄다는 평가도 있어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위인입니다.
에도 시대가 끝나는 계기를 만든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는 에도 막부 말기인 막말 시대의 인물로, 소설·드라마·영화에 자주 등장하며 좋아하는 위인 순위에서도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립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막부를 무너뜨릴 힘을 지닌 사쓰마번(현재의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재의 야마구치현)이 동맹을 맺도록 했습니다. 또한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반환하는 대정봉환안을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이 막부에 제안하도록 진언하는 등 막말에 크게 활약한 인물입니다.
일본 최초의 상사를 만들고 일본인 최초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등 많은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조금 독특한 풍습과 문화
에도 시대에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습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조금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려 보세요.
에도 시대의 초밥은 주먹밥만 했습니다
에도 시대의 초밥은 빠르고 저렴하게 배를 채우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초밥보다 컸으며, 현재의 주먹밥만 한 크기였다고 합니다.
에도에서는 화재가 나도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에도의 가옥은 목조 건축물이었고 밀집해 있어 화재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수도 시설 정비가 미흡해 만성적으로 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화재가 나도 불을 끄는 대신 가옥을 허물어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공중목욕탕인 센토는 혼탕이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센토가 발달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남녀의 목욕 공간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남녀 모두 같은 목욕 공간에서 알몸으로 목욕하거나 몸을 씻었습니다.
우키요에의 25%가 춘화였습니다
춘화는 성 풍속화로, 유명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우타가와 구니요시도 그릴 정도로 에도 시대 조닌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성적인 목적뿐 아니라 길상물이나 부적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에도 시대부터 남아 있는 풍경과 거리
오늘날에도 에도 시대의 성곽과 거리가 남아 있는 명소가 있습니다.
에도 시대의 성곽과 거리를 거닐며 당시의 문화와 분위기를 직접 느껴 보세요.
에도 시대의 거리가 남아 있는 ‘히다 다카야마 옛 거리’
기후현의 ‘히다 다카야마 옛 거리’에는 에도 시대 성하마을의 풍경이 남아 있어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양조장과 고택을 개조한 카페, 잡화점 등이 늘어서 있어 즐겁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에도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 ‘에도 원더랜드 닛코 에도무라’
‘에도 원더랜드 닛코 에도무라’는 가도·역참·상점가·닌자 마을·무사 저택 등 실물과 똑같은 거리를 재현한 테마파크입니다.
닌자와 사무라이, 영주 등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재현된 거리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에도 시대의 직업도 체험할 수 있어 당시의 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성곽 건축물 ‘히메지성’
에도 시대 초기에 건축된 ‘히메지성’은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일본의 대표적인 성곽입니다.
흰 회반죽으로 전면을 마감한 선명한 흰색 성벽 덕분에 ‘백로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사진
-

에도 시대 거리의 이미지
-

에도 시대의 평화로운 거리 이미지
-

미국 해군 제독 페리
-

에도 시대에 성행한 우키요에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묘로 건립된 다이유인
-

사카모토 료마
연혁
- 1603년~1700년
- 에도 시대 초기·전기
- 1700년~1750년
-
에도 시대 중기
겐로쿠기~쇼토쿠기(1700년~1716년)
교호 개혁(1716년~1745년) - 1750년~1850년
-
에도 시대 후기
다누마 시대(1767년~1786년)
간세이 개혁(1787년~1793년)
분카·분세이기(1804년~1830년)
격동의 덴포기(1832년~1846년) - 1850년~1865년
-
에도 시대 말기
개항·미일화친조약(1853년~1858년)
분큐기의 국내 정치(1861년~1864년)
제1차·제2차 조슈 정벌, 효고 개항 문제(1864년~1866년)
대정봉환·왕정복고(1868년)


